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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5월 9일, 대한민국이 사랑한 ‘뽀빠이 아저씨’ 이상용 선생님이 향년 81세로 우리 곁을 떠났습니다. 그의 “파이팅!” 외침은 더 이상 들리지 않지만, 우리가 받았던 위로와 웃음은 영원히 남을 것입니다.
이 글은 눈물로 시작해 미소로 끝나는, 한 국민 MC의 생애와 정신을 담은 기록입니다.
지금 이 순간, 그를 기억하고 싶은 모든 분들을 위해 준비했습니다.
전 국민이 사랑한 '뽀빠이 이상용'
“집 떠나와~ 군대에 가면~”
이 노래가 울려 퍼질 때, 수많은 청춘과 부모의 눈시울을 적셨습니다.
그 중심엔 늘 따뜻한 웃음과 단단한 목소리의 MC, 이상용 선생님이 있었습니다.
그는 단순한 방송인이 아니라, **세대와 세대의 다리가 되어준 진짜 어른**이었습니다.
아이들에게는 힘이 되어주는 '뽀빠이 아저씨', 군 장병들에게는 ‘우정의 무대’의 영웅.
그리고 567명의 심장병 어린이에게는 삶을 되찾아준 ‘두 번째 아버지’였습니다.
한눈에 보는 생애 요약
항목 | 내용 |
---|---|
출생 | 1944년 4월 2일 / 충남 서천 |
방송 데뷔 | 1971년 CBS 기독교 방송 MC |
대표 프로그램 | 모이자 노래하자, 우정의 무대 |
주요 수상 | 국민훈장 동백장, 체육훈장 기린장 외 다수 |
별세 | 2025년 5월 9일, 서울 서초구 자택 인근 |
삶의 순간들
📍 뽀빠이의 시작
1975년 ‘모이자 노래하자’에서 등장한 그는, 힘찬 “파이팅!”으로 어린이의 친구가 되었습니다.
보디빌더 출신다운 체격과 해맑은 에너지로, 매주 수많은 아이들의 우상이 되었죠.
📍 군인의 친구 ‘우정의 무대’
1989년부터 1997년까지 MBC '우정의 무대'를 통해 전국 군부대를 순회하며 장병들과 함께 울고 웃었습니다.
“저분은 제 어머니입니다!”라는 명대사, “고향 앞으로 출발!”이라는 구호는 여전히 전설로 남아 있습니다.
📍 567명 아이들의 아버지
1973년부터 시작된 심장병 어린이 후원 활동은 50년 가까이 이어졌습니다.
자신의 출연료, 강연료, 심지어 밤무대 선불금까지 모두 아이들에게 썼다는 일화는 지금도 회자되고 있습니다.
그가 남긴 메시지
- “사람은 나누어야 진짜 삽니다.”
- “나는 제일 약하게 태어났지만, 가장 건강한 사람이 되고 싶었어요.”
- “심장병 아이들이 다시 뛰는 것만으로도, 난 충분히 행복합니다.”
그의 삶은 말보다 행동이 앞선, 진짜 어른의 모습이었습니다.
Q&A
Q1. 왜 '뽀빠이'라는 별명을 얻었나요?
A1. 다부진 체격과 활기찬 성격으로 어린이 방송에서 큰 사랑을 받으며 자연스럽게 얻은 별명이었습니다.
Q2. 정말 567명의 수술비를 혼자 부담했나요?
A2. 출연료 외에도 강연, 행사비까지 아이들을 위해 사용한 기록이 여러 방송을 통해 입증되었습니다.
Q3. 방송 중단 사유는 무엇인가요?
A3. 1996년, 심장병 어린이 기금 관련 오해로 고발당했으나 무혐의 판결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그로 인해 모든 방송에서 하차했습니다.
Q4. 끝내 명예 회복은 되었나요?
A4. 2000년대 중반 복귀하며 대중의 오해를 풀었고, 2024년 방송연예대상에 시상자로 등장하면서 사실상 명예 회복되었습니다.
Q5. 그가 가장 소중히 여겼던 순간은?
A5. 후원 아이들의 수술이 끝나고 웃는 얼굴을 볼 때, 본인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이라고 했습니다.
이제 고향으로 출발하신 뽀빠이 선생님께
이상용 선생님의 인생은 단지 화려한 방송 이력이 아닌, 한 사람의 따뜻한 용기와 실천이 만들어낸 기적이었습니다.
그는 ‘국민 MC’가 아니라, 진정한 ‘국민의 위로자’였습니다.
이제는 무대 아래에서도, 저 멀리 하늘에서도
“고향 앞으로 출발!”을 외치며 우리를 지켜보시겠죠.
선생님, 고맙습니다. 사랑합니다. 영원히 기억하겠습니다.